김신기 서포터(왼쪽)와 시각장애인 골퍼 조인찬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눈도 소복이 내렸습니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곳곳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신바람나게 합니다.

마지막 남은 달력의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하고 되새김질 해봅니다. 올해는 누구와 어떤 소중한 인연을 맺었을까.

골퍼라면 몇 타나 줄이고 즐거운 골프를 했는지. 혹시 플레이하면서 동반자에게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잊지 못할 라운드가 있었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과의 골프였습니다. 시각장애인 골퍼에게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참으로 놀랐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볼을 클럽으로 맞추고, 그린에서 볼을 홀에 쏙쏙 넣는 것을 보고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유독 눈에 띈 골퍼는 조인찬(60)씨였습니다. 시력이 정상이던 조인찬씨는 고압가스제조업을 하던 30대 초반인 1986년 골프에 입문했지요. 인천국제CC에서 친 2오버파 74타가 베스트스코어입니다. 핸디캡 9를 놓고 클럽챔피언대회까지 나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1988년 오른쪽 눈에 황반변성(黃斑變性)이 발병해 6개월 만에 시력을 잃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 벌어졌습니다. 2000년 왼쪽 눈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 2005년 시각장애 1급 환자가 됐습니다.

조인찬씨는 볼을 참 잘 때렸습니다. 거리도 내략 200야드는 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언의 타점도 좋고, 퍼팅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잘 칠 때는 70대 후반의 스코어를, 평균 80대 중반은 친다고 합니다.

프로골퍼 정포영씨가 조인찬씨에게 골프지도를 하고 있다.

그가 이런 스코어를 유지하는데 교회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한다는 것입니다. 혜화동에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방배동 화인골프연습장으로 향합니다. 먼곳까지 가는 이유는 이곳 연습장에는 시각장애인 골퍼를 특별히 위한 시스템이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골퍼 정포영씨기 주인인데 시각장애인에게는 특별한 배려를 해준다고 합니다.

시각장애인골프협회 상임이사였던 조인찬씨는 국제시각장애인골프협회 (IBG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 출전해 세번이나 우승한 실력자입니다. 특히 올해 창설된 미국팀과 세계연합팀의 블라인드 라이더컵에 출전해 연합팀 우승에 일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인찬씨가 좋은 성적을 올린데는 보이지않게 도움을 준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베어크리크CC가 일등공신입니다. 7년 동안 시각장애인골프대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베어크리크 유종욱 회장과 조규섭 사장은 국제대회를 앞두고 조인찬씨에게 언제나 무료로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습니다.

삼성그룹에서 운영하는 에버랜드의 글렌로스 골프장과 가평베네스트GC도 조인찬씨의 연습라운드를 위해 365일 문을 열어 두었고요.

볼빅 문경안 회장은 용품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포천힐스CC 신승남 회장과 이동주 사장도 올해 예스골프와 함께 시각장애인골프대회를 개최해 주었습니다.

군산CC 박현규 회장과 박성주 사장도 시각장애인골퍼들에게는 언제든지 편리를 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인찬씨의 손발이 되어 주는 서포터 김신기(61·무역업)씨의 무한한 헌신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큰 사랑을 받은 조인찬씨가 화인연습장에서 골프를 배우는 시각장애인 골퍼와 서포터에게 조촐하지만 소중한 송년식사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를 돕는다는 것, 쉬운 듯 보이지만 실행을 하려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따듯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한번쯤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안성찬 골프대기자 golfahn@